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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
작성일23-10-2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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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방.
연한 초록색이 감도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창가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 소담히 끼워진 반지는 오늘도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붉은 상의에 흰색 하의로 이루어진 제복을 입은 그는 여인을 향해 성큼성큼 빠르게 다가왔다.
“로지.”
자신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에 여인, 로즈데일의 미소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루카스, 왔어?”
“응. 늦어서 미안. 기다리느라 지루했지?”
그는 의자에 앉은 그녀에게 허리를 숙여 키스했다.
“아니야. 나도 방금 준비 끝나고 여기 앉았는걸?”
키스를 받은 로즈데일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붉은 눈동자를 또랑또랑하게 뜬 채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린 루카스가 픽,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매 순간마다 나사가 몇 개는 빠진 듯하다. 이 귀여움 앞에서는.
루카스가 로즈데일을 두 팔에 사뿐히 안아 들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황후 폐하?”
“소파가 좋겠어요. 저를 폐하의 무릎 위에 앉혀 주시겠어요?”
“명을 받들죠.”
로즈데일과 킥킥거리며 웃은 루카스는 소파로 걸었다.
한때 황제의 침실이었던 방은 새로 맞이한 또 다른 주인 로즈데일의 취향으로 다시 꾸며진 상태였다.
전체적인 색은 연두색으로 편하고 따스한 느낌이 강했고, 도자기 같은 인간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소품이 많았다.
로즈데일은 이 방이 좋았다.
이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나 키스를 해 주는 인간이 좋았다.
그녀는 그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곧 소파로 도착한 루카스가 로즈데일을 제 무릎에 둔 채로 조심스럽게 앉았다.
도착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은 채로 얼굴을 감상했다.
깔끔하게 넘긴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잘 깎은 조각이 보였다. 그 속에 박힌 녹색 보석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역시, 너무너무 좋아.
로즈데일은 루카스의 입술에 촉, 제 입술을 맞췄다.
“오늘도 예쁘네, 우리 루카스는?”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야.”
그는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정말 억울해했다.
먼저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루카스를 놀리는 데 성공한 로즈데일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다시금 입술에 키스했다.
사르르 녹아내린 그가 간드러지게 눈꼬리를 접을 때까지.
“그러고 보니까 요즘 로지는 바지보다 드레스를 더 자주 입네?”
금세 다 녹은 루카스가 로즈데일의 드레스 자락을 만졌다.
“이따 퍼레이드 때 불편하지 않겠어?”
“괜찮아. 배가 안 조여서 요즘엔 드레스가 더 편하더라고.”
로즈데일이 살짝 살집이 오른 배에 손을 가져가자 루카스도 그 위에 손을 겹쳤다.
“응. 그것도 그렇겠네.”
튀어나오지도 않은 배를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그때.
문밖의 기사가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루카스의 무릎 위에서 내려온 로즈데일이 그 옆자리에 앉자 곧 문이 열렸다.
“제국의 위대한 태양과 달을 뵙습니다.”
“프레드릭 공. 어서 와요.”
로즈데일이 손짓하며 그를 반겼다.
그동안 머리가 더 하얗게 센 프레드릭의 낯빛은 오히려 예전보다 윤기가 흘렀다.
소공작에게 대리를 맡기고 아내와 요양을 떠난 시골 마을이 무척이나 잘 맞는 모양이었다.
“수도엔 언제 온 거예요?”
“오늘 도착하자마자 문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무척이나 기쁜 소식을 들었는데 이 늙은이가 요양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로즈데일의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은 프레드릭이 조심스럽게 그녀와 눈을 맞췄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그리고.”
평소 그가 잘 웃는 모양으로 주름이 잡힌 눈꼬리가 다시 한번 인자하게 접혔다.
“감사합니다. 제 기도를 듣고 이곳까지 와 주셔서, 저희의 황후 폐하가 되어 주셔서요.”
“…….”
로즈데일은 말없이 프레드릭의 주름진 손을 두 손 모아 잡았다.
처음 에로스의 신전에서 그를 봤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브리아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황제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아 달라던 그의 모습이.
대제국의 공작이나 되는 인간이 전설로만 치부되던 신전으로 찾아가 엎드렸던 간절함이 오늘 있는 행복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로즈데일은 그날의 프레드릭을 보듯, 지금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프레드릭을 바라보았다.
“공작. 당신의 기도는 이루어졌나요?”
“더없이 이루어졌지요.”
프레드릭은 로즈데일의 장갑 위로 존경의 입맞춤을 건넸다.
“폐하께선 완벽한 신의 사자셨습니다.”
그의 대답에 로즈데일은 한겨울도 녹이는 햇살처럼 웃어 보였다.
루카스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젠 나만의 큐피드기도 하지.”
“하하. 에로스 님의 신전을 다녀왔다며 이 늙은이에게 겁을 주시던 그날의 폐하는 잊으셨나 봅니다.”
“……미안하게 생각하네, 정말로.”
목청을 보이면서 웃어 대는 프레드릭에게 루카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오래전의 오만하고 여유 없던 자신을 대신해서 더욱더 깊이.
그러던 때에, 또다시 문밖의 기사가 외쳤다.
“케인 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루카스가 문을 열도록 허락하는 동안, 로즈데일은 프레드릭에게 앉으라며 소파 자리를 권했다. 그의 관절도 아주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하니까.
“제국의 태양과 달을 뵙습니다. 아, 프레드릭 공작 각하께서도 와 계셨군요.”
프레드릭은 케인과 눈 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케인은 웬 조약돌을 가져와 로즈데일에게 내밀었다. 축제 마지막 날을 맞아 멀끔하게 차려입은 의상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황후 폐하, 요정왕께서 보내셨습니다.”
“또?”
로즈데일은 한숨을 내쉬며 돌을 받았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소식을 전해 들은 며칠 전부터 엘피스는 인간계를 불쑥불쑥 찾아와 로즈데일에게 선물을 주고 가고 있었다.
“로지. 이번엔 또 뭐야?”
루카스가 평범해 보이는 돌을 보며 물었다.
달빛을 받으면 잠에서 깨어 노래하는 달맞이꽃이라든가 스스로 빛을 내는 물이라든가, 항상 생각도 못 해 본 요정계의 선물을 갖다 주던 엘피스라서 이번에도 기대되는 눈치였다.
“이거? 품고 있으면 따뜻한 돌.”
로즈데일은 배에 동그랗고 예쁜 돌을 가져가 붙였다.
“이렇게 몸에 붙이면 마나도 나눠 줘서 기운이 생기거든.”
“로지한테 필요한 선물이었네. 곧 퍼레이드 하러 가려면 안 그래도 힘이 나야 했는데.”
루카스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러나 로즈데일은 한숨만 크게 내쉴 뿐이었다.
“난 왜 선물 같지 않고 뇌물 같지? 죽은 후에 꼭 요정계로 오라는…….”
“안 됩니다, 황후 폐하!”
별안간 케인이 소리치며 헐레벌떡 다가왔다.
그런 주제에 또 데시벨은 한껏 낮춰서 시끄럽다고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놀란 로즈데일이 왜 그러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케인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 주…… 아무튼 그 단어 얼른 취소하십시오.”
“뭐? 죽는다는 말 말이…….”
“아이, 그 말 좀 하지 마시라니까요?”
곧 숨넘어갈 듯 창백한 케인의 얼굴에 루카스와 프레드릭이 어깨를 떨며 웃었다.
“그래, 로지. 그냥 취소해 줘. 케인 쓰러지겠다.”
“하아, 진짜. 알겠어. 취소. 됐지?”
로즈데일이 졌다는 듯이 대충 말했다.
그런데도 케인의 입술은 쉬지 않고 열렸다.
“안 됐습니다! 한숨도 쉬지 마세요! 복 나갑니다.”
“뭐? 그런 게 어딨어?”
“속설에 따르면 그렇지요.”
당당하게 펴진 케인의 가슴에 로즈데일은 할 말을 잃었다.
요즘 정말 케인 때문에 귀찮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뛰지 마라, 오래 걷지도 마라, 몸에 좋은 음식만 먹어라.
뭐 그런 거라면 참아 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다리 떨지 마라, 한숨 쉬지 마라, 그러다 복 나간다. 그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는 어디서 들어 와 잔소리하는 건지, 정말 성가시다.
“케인.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알아 오는 거야?”
“황궁에서 오래 일했던 사용인들에게 물어서 들었지요. 그리고 책도 좀 찾아 읽었고요.”
“도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경악하는 로즈데일이 귀여워서 루카스는 그녀의 말랑한 볼만 콕 찔렀다. 케인을 말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로즈데일은 하는 수 없이 프레드릭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저 노인은 그저 실실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체념한 그녀가 동태눈으로 잔소리를 들으려는데, 드디어 케인이 주제를 바꿨다.
“아 참, 폐하께서 황자 시절에 쓰셨던 방은 축제가 끝난 내일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디자인이 있으십니까?”
“음, 결정한 건 아직 없긴 한데.”
로즈데일과 루카스가 눈을 맞췄다.
밤마다 둘은 그 방의 얘기를 나누곤 했지만, 아직 결정된 건 하나도 없었다.
몹시도 두근두근하고 설레는 일이라서 너무 많은 생각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흠흠. 그렇다면 감히 제 짧은 소견도 말씀드리자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케인은 목청까지 가다듬으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침대는 창문에서 대각선으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유모의 말에 따르면, 침대맡 벽에 풍경화를 걸어 두면 건강에 좋다더군요.”
“응? 그건 또 무슨…….”
“방의 색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노란색이 좋겠고, 황후 폐하께서 직접 짜신 마크라메를 걸어 두면 사고가 생기지 않고 무사히 자란다고 하니…….”
“아, 케인! 그보다 그, 저, 오늘 에로스 님이 다녀가신다고 하셨는데, 오웬 경께 얘기 들었어?”
로즈데일이 케인의 미신 찬양을 끊고 주제를 돌렸다.
아직 못 전한 미신이 많은 그는 영 마뜩잖아 보였지만, 그래도 황후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예. 에로스 님께서 태어나실 아기님의 대부가 되어 주고 싶다고, 대신관께 말씀 전하셨다 합니다. 안 그래도 폐하께 여쭤달라더군요.”
“응? 에로스 님께서 우리 아이의 대부가 되고 싶으시다고?”
“요정왕께서 알면 또 싸우시겠군.”
루카스가 로즈데일의 배로 손을 가져가며 피식했다.
아직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작은 배 속 아기는 벌써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피곤할 노릇이었다.
로즈데일도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배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가. 들리니? 모두가 너를 아주 많은 사랑으로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너에게 어떤 사랑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아직은 느껴질 리 없는 태동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로즈데일과 루카스는 행복에 젖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퍼레이드 시간이 다가왔다.
“갈까?”
일어난 루카스가 손을 내밀었다.
로즈데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스타베팅 종류의 사랑이 내려앉아 있다.
“응.”
로즈데일도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맞잡은 손이 무척이나 굳건하고 따스했다.
지금껏 늘 그래 왔듯, 앞으로도 함께 울고 웃을 이 방을 나서는 순간.
로즈데일의 머릿속으로 언젠가 들었었던 세계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작은 아이야,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니?―
로즈데일은 루카스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활짝 웃었다.
“네.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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